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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Rose

  마츠노 이치마츠에게는 비밀이 있다.

  첫 번째, 친형에게 사랑을 하고 있다.

 

  같은 얼굴에, 근친에, 동성애라니. 쓰레기도 이런 쓰레기가 없지. 그는 절로 튀어나오는 헛웃음을 집어삼켰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꿈 꿀 수조차 없는 사랑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 이치마츠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똥 같은 둘째 형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거지같은 탱크톱에 기고 다니는 극강의 나르시스트에, 사고방식이 사이코패스같은 형. 하지만 구역질이 날 정도로 쓰레기 같은 동생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

  두 번째,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 이 두 번째의 비밀이 가장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의 사랑은 전세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이니까. 전생만 아니었어도 이 멍청한 둘째 형을 사랑하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치마츠는 그리 믿고 싶었다. 아니라면 정말 자신은 얼굴도 똑같은 친형에게 욕정하는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러니 이 사랑은 전생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치마츠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

  전생의 이치마츠는 일명 사용인이었다. 그것도 카라마츠의 저택에서 일하고 있었다. 잔뜩 화상의 흉터가 남아있는 몸과 얼굴을 눈만 희번뜩하게 보이는 무섭게 생긴 가면. 지금의 자신이 생각해도 참 흉측하고 못난 모습을 가면으로 보호한 채, 그는 대저택의 정원에서 정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이치마츠가 처음부터 카라마츠의 저택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빈민가의 아이였던 이치마츠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흉터 가득한 몸만을 겨우 가진 채 소매치기와 좀도둑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고아였던 이치마츠가 부유한 그의 저택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말 그대로, 주워진 것이다.

  “히힛.”

 

  이치마츠는 당시의 카라마츠를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그때서부터 넌 신이었냐. 응, 신이었다.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며 세상이 환해지도록 웃던 카라마츠는 분명 신이었다. 당시의 이치마츠는 지금보다 더 어둡고 비참한 사람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빌어먹을 몸뚱이 하나로 살아나갔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본성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인가.

  하루하루 말라죽어가던 그와 카라마츠의 첫 만남은 어찌 보면 평범했고 어찌 보면 평범하지 않았다. 본래라면 절대 발을 들일 리 없는 빈민가에 값 비싼 구두와 양복을 입은 채 당당하게 들어선 카라마츠의 지갑을 이치마츠가 노린 것이 계기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렇게 사치스러운 복장을 본 적이 없는 소년이 은근슬쩍 카라마츠의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잡힌 것이다.

  아, 나는 이제 죽었구나.

  이치마츠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가면 속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귀하신 몸에 손때가 묻었다는 것만으로도 매를 맞아 죽는 녀석들도 많이 봤다. 그런데 자신은 주머니를 털다가 들켰다. 분명 곱게는 죽지 않으리라. 그러나 예상하던 매타작이 오지 않았다. 의아함에 찡그린 눈을 떴다. 얼굴에 항상 붙어있던 가면을 떼어낸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화상으로 인해 흉측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이 드러난 것을 깨달은 이치마츠가 허둥지둥 가면을 빼앗으려는 순간, 청년은 웃었다.

  “소년, 내 저택에서 일해보지 않겠나?”

  믿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이 빌빌거리며 뒷골목에서 소매치기나 하며 살아가던 그에게 찾아온 전환의 시발점이었다.

 

*

  빈민가의 아이들을 꼬셔내어 제 입맛대로 팔아먹는 사기꾼인가 하고 의심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치마츠는 정말로 번듯한 저택에서 일하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며(그리고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장이라도 도망칠 준비를 하던) 이치마츠는 뒷골목 시절부터 사용했던 가면을 쓰고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꽤나 극적인 생활의 변화였다. 굶는 것은 일쑤였고, 깨끗한 잠자리에서 팔다리를 쭉 뻗고 자는 것이 그리 어려웠는데. 이젠 삼시세끼가 전부 주어지고 매일 잘 말려진 흰 이불에 감싸여 편하게 잠들 수도 있다. 그리고 참새눈물만큼 적지만, 월급마저 주어진다. 이치마츠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죽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하고 볼을 꼬집어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천국을 선물해준 장본인은,

  “으응―? 뭘 보나? 마이 퍼펙트한 페이스?”

  “……칫.”

  “하항―?”

 

  …이치마츠의 옆에 딱 달라붙어 저런 쓸 곳 없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 이치마츠는 아무리 자신을 구원해준 카라마츠라지만 그를 싫어했다. 자신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리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았었는데, 카라마츠는 딱히 하는 일도 없이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치졸한 질투였다. 아무리 자신이 이 곳에 속해도 이 사람의 수준까지는 올라가지 못한다는 저열한 마음이었다. 그런 이치마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사람은 느긋하게 활짝 핀 장미 하나를 가리켜보였다.

  “제이슨, 이것 보게! 제이슨의 러브를 먹고 이렇게 예쁘게 피었다!”

  “예이예이. 참 예쁘네요.”

  이치마츠는 대강 대답하며 장미를 손질했다. 그는 카라마츠에게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지 않은 채였다. 무슨 일이 생기거나 이곳에서 도망 쳤을 때, 자신을 최대한 물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뒤늦게 이 남자에게 얼굴을 들켰음을 상기했지만, 그래도 이름이 불리고 싶지 않아 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주워진 이후로 자신의 주인이 된 이 남자는 유독 붉은 장미를 좋아했다. 옆에서 떠드는 입을 막기 위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만, 돌아온 대답은 “정열적이고 화려한 붉은 색이 러브와 닮지 않았나!” 였다. 괜히 물어봤다. 처음 이치마츠로부터 주어진 질문에 카라마츠는 흥분하여 붉은 장미의 뜻과 정열적인 색깔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거 아나, 제이슨! 붉은 장미의 꽃말은―”

 

  일일이 들어줄 가치가 없어 이치마츠는 대충 흘려들었던 기억이다.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카라마츠라는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도 딱히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좀 더 붙어서 봤더니 제대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 갑자기 장미에게 사랑을 속삭이질 않나, 허공에 대고 매우 오래전 연극대본을 연습하질 않나(그것도 일인 다역이었다). 심지어 처음의 단정하고 비싼 옷차림은 거짓말처럼 저택 안에서 그는 속옷조차 입지 않은 채 바스가운 차림으로 종횡무진했다.

  이치마츠는 미칠 것 같았다. 장미를 사랑하는 카라마츠가 가장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장소는 정원이고, 그 정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얼마나 저걸 좋아하는 거야, 먹지도 못하는 걸. 소년은 슬슬 어른처럼 다부져가는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귀찮고, 짜증나고, 가끔 보이는 그 허벅지라던가, 가슴팍이라던가, 유려한 허리선이라던가…….

  ‘아악!’

 

  진짜로 미쳤냐, 그런 똥 같은 주인에게 욕정하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가뜩이나 부스스한 머리를 더욱 헝클어뜨렸다. 그는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이성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왜, 저 한 대 쳐주고 싶은 남자에게 자신은 허덕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분명 자신이 사춘기의 청소년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자신을 겨우 납득시킨 그였으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눈을 둘 곳이 없다고!’

 

  카라마츠의 행동은 얌전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허벅지는 물론이요, 가끔은 중요한 그 부위도 흘긋흘긋 보였다. 그래, 지금 당장 넘어져서 아슬아슬하게 가린 저 자세처럼. 정말 미쳤지, 이치마츠는 진한 장미의 내음에 집중하며 애써 생각을 흩어버렸다.

  역시 빨리 돈을 모아서 여기에서 빠져나가야겠다. 이치마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린 가위를 힘주어 잡았다. 힘내자, 나.

*

  식사를 하러 갔는지 항상 머물던 이치마츠가 없는 정원에서 카라마츠는 콧노래를 부르며 거닐고 있었다. 발이 다칠 것은 걱정하지도 않은 채, 맨발로 사박사박 거닐던 그의 발걸음이 멈춘 것은 가늘게 떨리는 동물의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고양이?”

 

  이 저택에 고양이가 숨어들은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카라마츠는 고양이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보단, 그 울음소리가 들리는 위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청년은 고개를 들어 앳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장미덩쿨 투성이인 이 정원에서 몇 안 되는 커다란 나무였다.

  “으응―? 큐트키티, 어떻게 그 높은 곳에 올라간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어봐도 당연히 답을 하지 못하는 새끼고양이는 다시 한 번 울었다. 야옹보단 차라리 삐약에 가까운 그 울음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혹시 이치마츠가 손질용으로 가져다놓은 사다리가 있나 주위를 둘러본 카라마츠는 낭패라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어쩜 그리 정리를 빨리빨리 잘 하는지, 사다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창고에 얌전히 누워있을 사다리의 존재에 아쉬움을 토한 그는 영차, 하고 나무를 붙잡았다. 어릴 적엔 나름 나무를 타본 몸이다. 분명 어떻게든 되겠지. 카라마츠는 무작정 나무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

 

  “……그래서,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요?”

  “아, 아하하…….”

 

  이치마츠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집어삼키며 미간을 짚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특식이 나오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빨리 식당으로 달려가 맛난 점심을 먹는 사이 이 망할 주인이 또 사고를 쳤다. 소년은 나뭇잎 사이로 한가롭게 달랑거리는 다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고양이를 구하러 올라갔다가 결국 다 같이 못 내려왔다는 겁니까?”

  “그렇다네. 고양이를 안고 내려가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더군.”

 

  말은 또 잘한다. “그래도 고양이를 구했잖나!” 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제 주인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선 뭘 해야 할까. 역시 내려오면 실수인 척 명치를 때려볼까. 일단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다.

 

  “뭘 구해요, 자기 자신도 못 구했으면서.”

  “…….”

 

  말문이 막힌 듯 다리의 휘적거림이 멈추는 것을 보며 결국 이치마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그는 두 팔을 벌렸다. 그걸 보았는지 희색이 가득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날 받아주려는 건가?”

  “아뇨, 고양이. 주인은 알아서 내려오십쇼. 고양이 때문에 못 내려온거라면서요.”

  “내, 냉정하군, 제이슨….”

 

  기어코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한 청년의 목소리에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단 내 체격으로 댁까지 받쳐주기엔 무리일 것 같거든요, 하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은 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이치마츠의 고집 센 표정에 카라마츠는 포기한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이치마츠의 품으로 고양이를 내려 보내려던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뚜둑거리는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도 버틸 만큼 버텨주던 나뭇가지가 결국 파업을 해버린 것을.

  요란하게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카라마츠는 추락했다. 그 와중에도 새끼고양이는 품에 안은 채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로 뛰쳐나갔다.

  적막했던 정원에 우당탕 사람 두 명과 고양이 한 마리가 구르는 소리가 울렸다. 고양이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냉큼 도망가 버렸다. 구해준 보람도 없는 고양이 같으니. 이치마츠는 괜스레 투덜거리며 벌러덩 누운 몸을 일으켰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왜 이 양반이 내 위에 엎어져있어. 아직 떨어진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이치마츠의 몸 위에 축 늘어져 헤롱헤롱 하고 있는 카라마츠의 온기가 온 몸을 통해 전해졌다. 소년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 심장을 자각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서히 정신을 되찾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가면 아래의 자수정을 닮은 눈동자와 마린블루보다 더 짙고 깊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 눈동자가 예쁘게 호선을 그리며 웃는 것을 보며 어른의 경계선에 선 소년은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사랑을 하고 있다고.

*

  이젠 뚜렷하게 성인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소년이 후우, 숨을 크게 내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고양이 구출 사건 이후로, 이 년이 후딱 지나갔다. 그 동안 이치마츠는 누구보다 정성스럽게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제야 장미의 매력을 알아준 것이냐며 감동하는 카라마츠는 무시한 채였다. 그가 형식처럼 가꿔오던 정원을 이렇게 열심히 가꾸기 시작한 것은 오로지 그의 주인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옆에서 열심히 붉은 장미에 대해 떠들어대던 카라마츠의 목소리를 따라 그 꽃말을 겨우 기억해냈기 때문이었다.

  - 제이슨, 알고 있는가? 장미, 그 중에서도 붉은 색의 장미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그래서 청혼할 때 많이 쓰이는 거라고 하더군.

  소년은 자신의 주인에게 고백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와 자신과의 신분차이를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자신이 할 일은 이 장미를 크고 탐스럽게 피워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이것들을 사랑하는 주인이 화려하고 탐스럽게 피어나 이 정원을 뒤덮은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마 의미 모를 수식어가 잔뜩 붙은 칭찬도 듣겠지. 그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평생 볼 수 없었다. 장미들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직전, 한 번 더 정원을 확인하러 갔던 그는 발견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카라마츠를.

  “주, 주인!”

 

  장미꽃잎이 개화할 준비를 하며 풍기는 진한 꽃내음 사이로 어릴 적 익숙했지만 이젠 잊어버린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거칠게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주인, 어쩌다가.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의원을…!”

  “그만 두게나, 제이슨.”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그를 피투성이의 손이 힘없이 가로막았다. 이미 카라마츠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쓰레기인 자신도 이렇게 질기게 생을 이어나갔는데, 어찌 당신이. 인간이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이렇게 죽으면 안 돼요. 나는, 사랑하는 당신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내가 죽기 전까지 보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역시, 이 장미는 제이슨, 자네의 마음이 담긴 것이었구나.”

 

  이치마츠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의식중에 고백을 했음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러는 와중에도 쿨럭쿨럭 피를 토해내는 자상을 힘껏 지혈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의 신이었던 당신이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부들거리는 손이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었을 때였다.

 

  “…나도, 사랑하고 있었다.”

  “뭐……?”

  “장미 내음이 나를 홀려 가봤더니, 제이슨이 보이더군. 그대는 장미가 이어준 내 사랑이었다.”

 

  죽어가는 주제에 흐트러짐 없이 또렷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이치마츠의 귓가를 울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달빛 아래에서 은은히 웃는 청년의 미소가 보였다. 기쁘지 않았다. 행복의 절정을 달려야할 서로의 마음 확인이, 죽기 전의 추억을 위한 것으로 변질되어버렸기에. 이치마츠는 자꾸만 힘을 잃고 떨어지려고 하는 카라마츠의 손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이름, 제이슨 아니에요. 이치마츠, 이치마츠라고 불러줘요.”

  “멋진 이름이구나, 이치마츠. 너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련?”

  “사랑해요, 카라마츠. 몇 번이고 불러 줄테니까….”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의 고백이라니, 행복하구나.”

  “그런 말 말고……!”

  “내세에서, 만나자, 이치마츠.”

  살해당한 주제에,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 카라마츠를 보며 소년은 오열했다.

 

*

  “…마츠! 이치마츠!”

 

  이치마츠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다는게 그대로 낮잠으로 이어진 모양이었다. 잠결에 흐릿한 눈을 부비며 일어나니 눈앞에는 지금까지 꿈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사람이 있었다.

 

  “망할마츠.”

  “치비타네로 술 먹으러 가자더군, 오소마츠가. 혹시 피곤한데 내가 깨웠는가?”

  “……아니, 간다.”

  “그렇군! 그럼 준비하고 나와라. 기다리고 있겠다!”

 

  드르륵, 탁. 낡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이치마츠는 눈을 감았다. 눈 뒤로 자신을 포함한 형제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카라마츠가 그려졌다.

 

  하. 내세, 또 내세.

  이치마츠는 지겹도록 입에 붙은 말버릇을 중얼거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

  최근 들어 망할마츠가 이상하다. 평소라면 이렇게 맑은 날, 그 똥 같은 옷을 입고 카라마츠 걸인지 뭔지를 찾으러 나가버렸을 텐데, 최근에는 방 안에 처박혀 익숙지 않은 토도마츠의 폰을 붙들고 끙끙대고 있었다. 화면을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어도 보았지만 화들짝 놀라며 아직 이르다는 말이나 해대니.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하고 이치마츠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카라마츠의 이상행동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펜과 종이에 무언가를 끼적거리며 고심하질 않나, 갑자기 머리를 싸매며 종이를 찢어버리질 않나. 드디어 저 안쓰러운 머리가 미쳐 버린건가, 하고 의심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저, 저기, 이치마츠. 혹시 오늘 시간 되는가?”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고양이에게 장난감을 흔들어주던 이치마츠에게 카라마츠가 무언가를 크게 결심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날짜 상으로 전생의 카라마츠가 죽은 날이었던지라, 평소보다 더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이치마츠는 무표정하게 형을 올려다보았다. 평소 당당한 짙은 눈썹이 애절함을 담고 느슨하게 늘어져있었다. 이치마츠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무슨 일인데.”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싫어.”

  “이, 이치마츠. 내 평생의 소원이다. 제발.”

 

  이것도 평소와는 다르다. 애초에 자신을 데리고 외출하지 않는 그가, 이렇게까지 애원하면서 같이 가길 바라는 것이. 오늘만큼은 정말로 나가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라마츠에게 막 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평범하게 수긍하면 그것은 마츠노 이치마츠가 아니겠지.

  “……고양이 캔. 비싼 거.”

  “에?”

  “싫어?”

  “아, 아니, 좋다! 10개도 사줄 테니까!”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제 형을 보며 이치마츠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까까지의 울상은 거짓말이라는 듯 희희낙락하게 이치마츠의 손을 붙잡고 카라마츠는 부리나케 전차표를 부여잡았다. 대체 무엇을 그리 보여주고 싶길래 전차까지 타고 나가냐는 이치마츠의 의문은 카라마츠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에서 희게 변색되었다.

  수 많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정원이었다.

  장미의 꽃내음이 쏟아지는 그 곳에서 카라마츠가 울음을 참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랑한다, 이치마츠.”

*

  마츠노 카라마츠에게는 비밀이 있다.

  첫 번째, 친동생에게 사랑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사랑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나르시스트라고 하지만, 같은 얼굴을 한 일란성 쌍둥이 동생에게 사랑을 품다니. 같은 얼굴에, 근친에, 호모. 누가 보면 싸구려 만화도 그런 설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웃을 법한 라인업이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확실하게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동생은 이상하게 그에게만 엄격했다. 그것이 슬펐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보여주는 자애로운 표정이나 가끔 누구보다 예쁘게 웃는 이치마츠를 사랑했다.

  두 번째,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꽤나 중요한 비밀이었다. 누구에게도, 심지어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 사랑은 전생에서부터 기억해 온 마음이었으니. 하지만 카라마츠는 알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전생의 기억이 없더라도 필연적으로 이치마츠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걸. 이것은 전생의 자신이 내세에서도 사랑하자는 저주 같은 말을 한 죄일 것이다. 죽어가면서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인연의 실로 꽁꽁 묶어버린 그의 오만이고 원죄이다. 이 사랑은 그랬다. 하지만 전생의 자신은 이치마츠를 놓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정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 준 사람이었으니까.

  전생의 카라마츠는 애정결핍이 심한 사람이었다. 어느 부자의 원치 않는 사생아로 태어나, 기억이 나기 전부터 존재를 숨기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위치에 지어진 저택에 거의 감금되다시피 살고 있었다. 저택의 하인들은 모두 본가에서 감시를 위해 보내진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어리디 어린 소년을 불청객 취급을 하며 아껴주지 않았다.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를 제외하곤 그 어떤 것도 소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글자를 깨우치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을 문맹으로 살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카라마츠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필요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카라마츠에게 있어 애정과 사랑은 오로지 소설과 연극대본 같은 곳에서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저렇게 살 수 없으니, 저 ‘특별한’ 것에서 끊이지 않고 소재로 쓰이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특히 결혼을 주제로 한 대본에서 붉은 장미의 뜻을 읽었다. 주인공은 애인에게 붉은 장미꽃다발을 안겨주며 말한다. ‘이 정열적인 붉은 장미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라오. 이 사랑을 당신에게 바치겠소이다.’ 그 때부터 카라마츠는 붉은 장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성인이 되던 날, 처음으로 바깥 외출이 허용되었다. 아마도 평생 없을 기회에 카라마츠는 잔뜩 들떴었다. 신난 발걸음으로 저택 밖으로 발을 내디딘 카라마츠는 이치마츠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놔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잔뜩 상처 입은 짐승 같은 그의 자수정빛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소년의 눈에서 읽히는 감정은 분명 자신과 동일한 그것이었기에. 그랬기에 청년은 처음 본 소년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이치마츠를 데리고 온 카라마츠는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만 했다. 사생아라더니, 급이 똑같은 아이를 데려왔네요. 네 출신이 거기인지는 어찌 알고 들어갔던거냐. 비웃던 그들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심장에 흉터처럼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전부 감수하고 이치마츠를 들였을 만큼 카라마츠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을 깔보지 않고, 말을 무시하지 않으며 자상하다. 누군가와 대화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 처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아마 그는 모르겠지.

  카라마츠는 소년이 부러웠다. 자신에게는 없는 자유가 있었기에. 언젠가는 자신을 떠나 다시 자유를 찾고, 사랑을 좇을 그를 질투했다. 그리고 공포했다. 카라마츠는 이치마츠 밖에 없는데, 그는 아니었으니까. 항상 배척당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는 그의 모습이 언제라도 그를 버릴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카라마츠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것은 아마도 이치마츠와 비슷할 것이다. 떨리는 맑은 보랏빛 눈동자가 깊은 심해 같은 푸른빛 눈동자와 마주했을 때, 카라마츠는 글로만 읽던 ‘사랑’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임을 깨달았다. 그게 기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라마츠는 장난으로라도 이치마츠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은 필요 없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박혀있던 그 인식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해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 자신에게 사랑받는다면 분명 이치마츠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죽을 때, 자신과 한 마음임을 알았다. 카라마츠는 욕심이 생겼다. 다음 생에서 가능하다면 너를 온전히 내 것으로 하고 싶다고. 그래서 내세에서 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것이 다음 생에서 얼마나 어리석게 심장을 부여잡을지도 모르고. 카라마츠는 전생의 자신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어리석고 불쌍한 자였다. 그것이 자신의 전생이라도 그의 평가는 바뀌지 않았다.

  “카라마츠 형, 그래서 장미를 1년 만에 제대로 피우는 법은 알았어?”

 

  생각에 잠겨 자신의 파트너 겸 막냇동생이 곁에 온 것도 모르고 있던 그의 몸이 튀어올랐다. 뭘 그리 놀라냐는 표정으로 토도마츠가 스마트폰을 톡톡 두드렸다.

  “형이 말한 장소, 찾았어.”

  토도마츠는 현재 카라마츠에게 있어 유일한 아군이었다. 유일한 형과 파트너에게는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는 그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주요 부분을 전부 토도마츠에게 알려준 탓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질색하던 토도마츠는 카라마츠의 증언과 실제로 일치하는 무수한 소문,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저택으로 인해 반신반의로 믿어 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토도마츠는 카라마츠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저택의 정원과 최대한 비슷한 구조의 정원을 찾아주었고, 대망의 그 날에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단 둘이 될 수 있도록 미리 플랜까지 짜주었다.

  카라마츠는 장미정원을 만들어 자신이 죽은 날,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날에 이치마츠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전 생에서는  이치마츠가 먼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흐드러지게 핀 장미정원에서 고백을 할 생각이었다. 확실하게 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준비였다. 언제까지 안고 갈수는 없는 감정이었으니까. 전이라면 몰라도, 이젠 친형제에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였다. 이런 감정은 정리하는 것이 맞았다. 카라마츠는 납득하면서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사랑이 시드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만발의 준비를 끝낸 카라마츠는 계획으로부터 1년 만에 이치마츠를 불러내었다.

 

*

  이치마츠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기어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 카라마츠를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로? 이건 꿈인건가. 꿈일 것이다. 아니라면 이렇게 행복할 리가 없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당신입니까?”

  “이치마츠?”

  “대답하세요. 주인, 입니까?”

  “그래, 나다. 나야, 제이슨. 너의 품에서 죽어간 카라마츠다…!”

 

  이 모든 순간이 기적같았다. 두 명은 오열하며 서로를 껴안았다. 맞닿은 몸과 몸을 통해 뜨거운 온기가 전해졌다. 아, 이 사람은 살아있다. 살아있어! 우레와 같은 충격이 밀려들었다. 살아있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지만 감격스러웠다. 한동안 치밀어오르는 울음을 참지 못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던 이치마츠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잔뜩 잠긴 그 목소리에 상황에 맞지 않게 카라마츠는 웃어버렸다.

  지금만큼은 여섯쌍둥이의 둘째와 넷째가 아닌, 저택의 주인과 제이슨으로 돌아간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내세에서도, 사랑하겠다고 했지 않았나.”

  “…여전히, 바보 같네요.”

  “싫지 않잖나?”

  “당연한 이야기를. …이번 생, 이 쓰레기가 받아가도 됩니까?”

  “논논, 넌 쓰레기가 아니다! 너는 내 러버야. 붉은 장미가 이어준 소중한 애인이다.”

  “여전히 말은 번지르르하네요.”

 

  이치마츠는 킥킥 웃으며 전생에서 칼에 찔렸던 카라마츠의 등을 토닥였다.

  카라마츠는 이제는 없는 화상의 흉터를 쓰다듬듯 이치마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랑한다, 제이슨.”

  “사랑합니다, 주인.”

  “사랑하고 있다, 이치마츠.”

  “사랑하고 있어, 카라마츠.”

 

  마치 짠 것처럼 각자에게 사랑을 고백한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손을 마주 잡았다.

 

  “나와 결혼해주지 않겠나!”

  “나와 결혼해주지 않겠어?”

 

  예쁘게 겹친 두 목소리에 두 사람은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그들을 축복하듯, 장미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진한 꽃내음으로 그들을 감싸안았다.

END

2019년 4월 2일 공개

​주최자: 차남생각부랄떨려(@42__UnU) 그림: Gattina(@Gattina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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