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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 대작전

  성큼, 봄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이치마츠는 잠시 그 나른한 공기를 즐기며 고양이를 어루만지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내보낸 뒤 고개를 돌렸다. 초록 소파에 누워있는 분홍색 저지. 토도마츠다. 막상 무언가 말을 하려하니 입 안이 메말랐지만 이치마츠는 힘을 내어 깔깔한 목을 울렸다.

 

  "...토도마츠, ...어이, 듣고 있어?"

  "........"

 

  아랑곳없이 고개조차 들지 않는 태도에 절로 울컥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지금은 참을 때다. 역시 드라이몬스터. 마츠노가 최종 보스. 심장도 없는 냉혈동물 같으니. 만만치 않은 적수다.  귀를 틀어막는 헤드폰도 아니면서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육둥이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눈동자는 휴대폰의 화면에만 처박힌 채 무언가를 톡토독 누르며 움직이지 않는다. 미간을 실룩이던 이치마츠는 이내 음흉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톳☆티."

  "톳티라 하지 말랬지. 정말 몇 번이나 말해야 들어 처먹겠어? 맨날 고양이, 어둠, 고양이, 어둠, 카라마츠보이즈로 뇌를 채우더니 이젠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거야? 아아! 불쌍한 톳티. 주변에 정상적이고 깨끗한 뇌를 가지고 있는게 나뿐이라니 가엽은 톳티."

  예의 그 스타바 괴물의 표정으로 순식간에 쏟아지는 말에 정신이 아득히 멀어질 뻔 했지만 2N년생 쌓아온 야미마츠의 정신력과 저 드라이한 막내에 대한 괘씸함 덕에 다행히도 크리스탈 하트는 버텨주었다.

 

  "...토도마츠 너, 자신한테 너무 후한 거 아니야?"

  "아니 이거 왜 그러셔? 현대사회에서는 이 정도의 드라이함이 가장 좋거든? 아아~ 이치마츠 형은 고양이랑 쿠소마츠 밖에 모르니까

어쩔 수 없겠네. 저엉말 야미마츠라니까."

 

  바락바락 대드는 말투는 역시 야미보다 야마가 돌게 하는 어투다. 콱 할퀴기라도 하면 좋으려만, 안타깝게도 꺼낼 얘기가 그 '쿠소마츠'에 관한 일이라서 이치마츠는 다시 참았다.

 

  "와 진짜 징그러워. 카라마 츠형을 언급하기만하면 발정난 고양이처럼 컁컁 대며 부정하더니 이젠 그것도 없네."

  "히히...감삼다.."

  "칭찬 아니거든? 욕이거든?" 

  "욕이면 더 좋고..흐...."

  그렇게 이죽대는 이치마츠를 보던 토도마츠는 잠시 하늘을 향해 뭐라고 중얼대더니(아마도 욕같다)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아무래도 제 형을 향한 안쓰러움과 분노가 벅차올라 비어있는 가슴을 답답하게 하기라도 하나보다.

  "그래서 뭐. 5초 안에 간단하게 말하고 끝내줄래? 나까지 오염돼버릴 거 같으니까."

 

  시간이 너무 박한 거 아냐? 내 알바 아니거든. 퉁명스레 뱉는 말투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이쪽에서도 얇디얇은 설탕과자 멘탈이 와장창 깨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으니 저 드라이 몬스터 녀석이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5,4....."

  "쿠소마츠한테 프로포즈를 하고 싶은데."

  "...................................."

 

  잠시 입을 턱하니 벌린 채로 굳어있던 토도마츠는 정확히 42초 후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작작 좀 해! 망할 근친호모새끼들!!!!"

 

  아, 이건 솔직히 좀 아팠다. 파삭.

 

*

 

  한화휴제,  둘 다 와장창한 멘탈을 추스르기 위해 우려내온 녹차를 마셨다. 어차피 그렇게 충격적인 일도 아니었고 이미 카라마츠와 내가 그렇고 그런 짓을 다해먹은 사이에 누가 탑이고 바텀인지도 무슨 플레이를 즐겨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이런 반응은 좀 놀랍다. 참고로 요즘 즐기는 플레이는 인기작가x미망인 컨셉이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가족끼리 근친으로 붙어먹었다는 건 그래. 나름 이해해 줄 수 있었어. 미친 생각이긴 한데, 이 세상 제일

최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붙어먹으면서 서로를 보듬는다는 레퍼토리는 베스트셀러니 드라마에서도 잘 나오고, 적어도 주변에 피해는 안가니까 쓰레기들끼리 잘 살아라~ 하는 기분으로 넘길 수 있었다고."

  "톳티, 말이 너무 심하지 않냐..? 그리고 생각 읽는거 그만둬줬으면 좋겠는데..."

  "나야말로 그만둬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 나는 호모마츠들 연애사정을 들어야 하는 자신이 제일 불쌍해 죽겠으니까. 빌어먹을 쌍둥이

싱크로나이즈. 망할 기적의 육둥이. 뭐, 프로포즈? 프~로~포~즈~???? 근친이다 못해 이젠 결혼이라니! 형이라고 있는 것들이 다 제정신이 아냐! 아아! 귀여운 막내 톳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같잖은 눈물연기에 표정을 있는 대로 구겼다. 저도 좀 구린 것을 알았는지 토도마츠는 금방 눈가를 닦아내며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눈물연기를 그만뒀지만 전혀 창피함 하나 없이 당당한 표정이다. 이젠 좀 그 뻔뻔함이 무서울 정도다.

  잠시 말없는 침묵만이 공기 중에 서렸다. 살짝 열린 창틈으로 봄을 머금은 선선한 공기가 슬며시 들어와서 조금 숨통이 트였다. 만약 쵸로마츠랑 함께였다면 어색해서 죽거나 자살을 고려해볼지도 모르지만, 상대는 드라이몬스터. 정신에 괴롭긴 하지만 만만한 상대다.

 

  "하! 참나. 누구더러 만만하다는 거야? 되게 기분 나쁘거든?"

  "나 지금 머리 3일 안 감았는데..."

  "웃기지 마셔. 어제도 다 같이 목욕탕 갔거든?"

  "칫... "

 

  "아, 근데 아까 화장실 가서 큰일보고 손 씻었던 기억이,"

  "더러워! 불결해! 끔직해!!!!"

  ".........ㅎ."

  "뭐야!! 뭔데 그 표정! 아, 아아아아.. 다가오지마! 다가오지마악!!!!!!!!!"

  눈물을 잔뜩 머금은 토도마츠가 죽어라 싫어하며 멀어지는 모습에 그만 너무나도 즐거워져 한참이나 손을 쥐락펴락 들이대며 토도마츠를 구석에 몰아넣고 놀아버렸다. 궁지에 몰린 그 모습이란 마치 카라마츠가 침대에서 견디다 못해 버둥대며 도망갈 때 같아서 오싹오싹하다. 물론 카라마츠와 다른 점이라면 이 막내 놈은 눈이 돌면 물어 뜯어버린다는 점이겠지만.

  결국, 제발 손을 씻고 나와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애원하는 토도마츠를 보며 만족한 이치마츠가 손은 씻고 나왔었다고 홀가분하게 말한 뒤 놀이는 끝났다.

 

  "놀이는 무슨 생명의 위협이었구만."

  "...인간을 무슨 폐기 불가 방사능 쓰레기로 보는 거야. 아, 이거 괜찮은데? 폐기 불가 방사능 쓰레기..적어둬야지."

  "그 컨셉 버린 거 아니었어?"

  "...사람을 무슨 컨셉매니아로 만들지 말아줄래?"

 

  메모를 끄적인 이치마츠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 식은 씁쓸한 녹차를 마저 삼켰다. 그래서.

 

  "프로포즈.. 어떻게 하면 좋을까."

 

  토도마츠는 영혼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녹차잔을 만지작거렸다. 영 입을 떼기 싫어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한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정말 해야 하는 일일까? 진심? 하늘에 맹세코?"

  "...응. 천연 에로 도짓코 싸이코패스 카라마츠가 금방 다른 놈한테 채여갈까봐 무서운 걸... 순진한 게 매력이니까 이상한 놈팡이한테

홀라당 속아 넘어가서 행복해하면 나 같은 쓰레기는 분명 잡지도 못할 테니까.. 적어도 법의 구속으로 잡아두면 NTR은 괜찮을 지도..."

 

  토도마츠의 짜게 식은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수위 연령이 15금이지만 제멋대로 넘어드는 거 같은데 이거 괜찮은 걸까. 잠시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 토도마츠는 다시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도대체 카라마츠 형은 이치마츠 형의 머릿속에서 어떤 존재로 있는 거야. 그거 이미 카라마츠 형 아닌데? 싸이코패스 빼고 맞는 게 없는데? 그냥 상상 속의 동물인데? UMA급인데?" 

  "...신? 아니, 성모랄까. 히힉."

  "세상에 이젠 사이비야? 미쳤구만."

  "쿠소마츠 믿으시고 광명찾자."

  "믿겠냐. 어지간히 돌았어야지."

 

  토도마츠는 그렇게 퉤 뱉듯이 말을 내뱉고는 다 식은 녹차를 원샷했다. 다시 고요한 침묵이 서렸다. 이치마츠는 조용히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너무 섣부른 생각이었을까. 그냥 조용히 가족 곁에서 서로가 이어져있다는 것만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나았을까? 아니면 조용히 픽XX처럼 감금-조교-세뇌 루트를 밟아서, 

 

  "메타발언 자제하고, 그리고 그거 정말 쓰레기마츠 형이라도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아니 애초에 그럴 용기도 없으니까 나한테 말하던 거 아니었어?"

  "...칫, 망할 브라콤 같으니." 

  "누가 할 소린데. 망할 네코마츠."

  토도마츠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카라마츠 보이즈라면서 카라마츠 형이 좋아할 만한 걸 몰라?"

 

  그렇게 말하며 바라보자니, 이치마츠는 아까 전에 방사능 폐기물을 적어놓던 메모보다 두꺼운 책을 꺼내 토도마츠에게 밀었다. 

토도마츠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300페이지는 될까 싶은 책은 꽤나 낡고 손때가 많이 타있어서 굉장히 많이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뭐야?"

  "일단... 프로포즈 플랜 4242가지를 적어본건데..." 

  "미친. 계획이 4242개나 된다는 게 더 어이없네."

 

  토도마츠가 뒷목을 턱 잡자 이치마츠는 머쓱하게 볼을 긁적였다.

 

  "...근데 카라마츠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다 준비는 해봤는데.. 역시 잘 모르겠어. 현실적으로 프로포즈를 4242번 할 수도 없고. 근데

너는 카라마츠랑 과.거.에 같이 잘 붙어 지냈으니까 카라마츠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포즈 방법을 알지 않을까 싶어서."

  "묘하게 기분 나쁜 악센트가 있었는데요. 나는 지금도 카라마츠 형이랑 잘 지내거든? 마치 전 남친 취급 같은 말투 기분 나쁘거든?"

  "일단 난 니트 이치카라 이외는 지뢰니까. 논리버시블이니까."

  "야, 진짜 메타발언 하지 말랬지. 아무리 2차 창작이라도 말이지, 나도 콤비 외에는 다 지뢰 될 거 같거든?"

 

  토도마츠는 그렇게 말하며 책을 휘리릭 넘겨 내용을 확인했다. 장미꽃, 반지, 여행, 드라이브, 야경, 레스토랑 등등. 일단 이 시나리오들 속에서 카라마츠 형의 포지션이 드라마 속 히로인 취급이란 것은 잘 알겠다. 뭐야 이거. 마킹? 오레노 온나? 뭔데 정말. 게다가 주인공이 제 형들이 아니라는 것만 놓고 보면 짜놓은 스토리는 또 재밌었다. 짜증나네~

  토도마츠는 그렇게 대충대충 시나리오를 보고는 책을 덮었다.

 

  "일단 말해두겠는데. 그냥 프로포즈 포기해."

  "어....?"

  "사실 이거 4242글자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너무 넘어가버렸어. 요즘은 1만자 넘어가면 잘 안 읽힌단 말이야."

  "...너야말로 메타발언 심각한 거 알아?"

  "아 몰라. 넘어가. 이미 오고 있으니까."

  "뭐가?"

 

  밖에서 쿵쿵쿵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토도마츠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 역시 망할 육둥이라서 그런지 결국 생각은 비슷하더라고. 잇☆치."

  "잇치라 부르지마!!"

  "순수한 의미에서는 카라마츠 형이 더 나았지만. 다신 이런 일로 나 좀 엮지마. 어휴 망할 호모마츠들."

  "...뭐? 나 말고 또 누가..."

  "뻔한 거 아니겠어?"

 

  퉁명스레 내뱉으며 말하는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마치, 못난 놈들이라며 결국 한숨 쉬며 멍청한 고백도 수긍해 주고 마는 부모님처럼.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는 발소리다. 발걸음마저 멋 부린 듯 당당한 기세가 서려있는 스텝은 그 녀석 밖에 없다. 서둘러 문 앞까지 왔던 발소리가 어쩐지 더 이상 들어올 기미가 안보이자, 토도마츠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키곤 문을 확 열었다.

  "...에?! 토도마츠?" 

  "벽에 똥칠할 때까지 평생 지지고 볶고 잘 사시던가."

  "...에?"

  "카라마츠는 똥 안싸."

  "아오, 극혐이야! 진짜!!"

  "에?!"

  버럭 신경질 낸 토도마츠는 발로 카라마츠를 뻥 차 넣은 뒤 문을 쾅 닫아버렸다. 

  코에 향기가 스쳤다. 꽃향기. 등 뒤에 숨기고 있었는 지 발차기에 활짝 피어오른 새빨간 장미 꽃잎이 화르륵, 허공에 퍼지고 선글라스 너머 놀란 표정으로 넘어지는 카라마츠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고, 팔을 뻗고, 가슴으로 받아내지만, 역시 역부족. 그대로 겹쳐진 몸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입술에 부드러운 촉감과 딱딱한 이가 스쳐서 옛날 첫키스가 떠올라 버렸다. 카라마츠도 그걸 떠올렸는지, 키스하다말고 푸흣, 웃어버린다. 목덜미에 따뜻한 팔이 감기자, 나도 카라마츠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마주한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표정이 어떠했는가는 기억이 지금도 잘 나지는 않지만. 

  "평생, 함께하고 싶어. 나랑, 결혼해 줄래?"

  부끄러움으로 떨리던 목소리에 발갛게 물들어 쑥스러운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얼굴은, 이미 최고의 프로포즈 고백이었다.

END

2019년 4월 2일 공개

​주최자: 차남생각부랄떨려(@42__UnU) 그림: Gattina(@Gattina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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